자기계발/독서

기억독서법-기성준

쭈니의아빠 2024. 10. 30.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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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가 되기 위해서는 책 읽기의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한다.100권을 읽고, 1,000권을 읽으면 고수가 된다는 말은 아무런 생각 없이 목표설정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권장하는 말이다.

정약용, 세종대왕, 링컨, 아인슈타인 등 독서를 하는 위인들은 결코 책을 읽은 권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꾸준한 독서력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 “하버드 대학교의 졸업장보다 독서하는 습관이 더 중요하다.”라고 빌게이츠가 강조한 것이다. 100권, 1,000권을 채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독서력을 가지는 것이 핵심이다.



책만 읽는 바보가 되지 마라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삶을 송두리째 바뀌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지 않더라도 삶을 바꾸는 영감을 얻는 경우도 있다. 독서에는 기준도, 원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독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을 만들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권수만 생각하면서 책만 읽는 바보가 되지 말자, 100권을 목표로 세웠으면 100권의 책을 읽으면서 독서력을 키워라. 그저 한권 읽고 책장을 채우는 행위만 하지마라. 그것은 절대로 성장하는 독서가 아니다.


겸손한 자세에서 진정한 독서법이 시작된다. 단순히 책을 빨리 읽거나 많이 읽는 것은 진정한 독서법이 아니다. 겸손한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마음이 없으면 백 권, 천 권을 읽어도 무의미하다. 자신의 지식을 확장하기 위해서, 교양을 채우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은 욕심이다. 이 욕심은 남들에게 잘난 척하거나 자랑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행위이다. 이것은 결코 제대로 된 독서법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이러한 욕심은 혼자 독서를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책에서든 강연에서든 계속해서 독서모임에 참여하라고 권장한다. 내가 무의미하게 여기며 지나쳤던 책이, 혹은 비판했던 책이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책이 될 수도 있다. 내게 아무런 영감 없이 무미건조하게 읽었던 책이 누군가에게는 혁신을 가져다준 책이 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아무런 감흥 없이 지나쳤던 책이 누군가의 삶을 바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나 스스로를 부끄럽게 느낄 때가 있다.

독서고수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어떤 책이든 칭찬하기 일색이다. 책을 비판할 시간이 없다. 그들은 어떤 책이든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책을 읽고 함께 나누고 싶어 한다. 독서법의 정석은 마음가짐에서 시작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진정한 독서고수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그런데 온 세상이 변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데는 장인의 정신이 깃들어 있기에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일 새로운 것을 찾는 이 시대에 금방 도태되고 말 것이다.

변치 않는 맛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여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는 장인들의 뇌가 바로 '뇌 가소성'을 증명한다. 누군가는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어지고, 시도하기엔 늦었다고 말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묵은 간장처럼 진한 맛을 뿜어낸다.

경험이 쌓여갈수록 점점 성숙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뇌다. 그것이 바로 필자의 뇌이며, 당신의 뇌다.

아인슈타인이나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들만이 아니라, 인간 모두의 뇌에는 더 개발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당신도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간절함이 있다면 충분히 당신만의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다.

톨스토이에게 한 청년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물었다. 그러자 톨스토이는 '좋은 사람을 만나라. 그렇지 못하거든 좋은 책을 읽어라고 대답했다. 만약 우리 옆에 좋은 멘토가 있다면, 또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면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에는 바로 내 곁에서 좋은 멘토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책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책 속의 위인들은 누구나 어디서든 손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을 돕는 독서노트

독서는 책을 준비하는 마음의 밭을 가꾸는 것부터 시작된다. 마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책을 읽느냐에 따라서 책을 제대로 읽는 것과 제대로 읽지 않는 것의 차이가 있다.
소개팅을 하거나, 중요한 손님을 만나기 전에는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이와 같이 책을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것을 넘어서 사람과의 만남으로 생각해보라. 책을 집필한 작가와 만난다고 했을 때, 마음가짐과 자세가 달라질 것이다. 책을 읽으면 잠이 온다는 사람들의 경우 마음가짐과 자세에서 문제가 있다. 책을 읽기 전 자신의 자세를 한번 뒤돌아보라. 마음가짐과 자세에 따라서 책에서 얻어지는 영감과 아이디어가 달라진다.


한 달에 4권의 책 씨앗심기

책을 몇 권 읽어야 전문가가 되고, 독서고수가 될 수 있을까. 괴테의 말을 보면 독서의 절대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1년에 100권을 읽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책을 읽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학자는 번데기에서 나비가 빠져 나오는 모습이 힘들어 보여, 가위로 번데기 끝을 살짝 찢어 주었고 나비는 번데기에서 쉽게 빠져나왔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 번데기를 찢지 못했던 나비는세상에 나왔지만 날아다닐 수 없었다. 번데기를 뚫고 나오는 과정에서 길러지는 힘이 나비가 날갯짓을 하며 자유롭게 날아다니도록 만드는 원천이었던 것이다.

조벽교수는 '세상에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한 사람은 자신이 만든 내일을 사는 사람. 또 한 사람은 남이 만든 내일을 사는 사람. 그리고 '내가 만든 내일을 사는 사람이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단순한 지식을 넘어서 '창의성,'창의적 인재', '창의적 발상 등 생각하는 힘을 요구한다. 얼마나 많이 아느냐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자신이 만든 내일을 살아가려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한다.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생각하는 것'을 손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독서이다. 독서를 하며 창의적이고 창조적이었던 위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자신만의 생각을 세울 수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번데기를 찢고 나가려면 우리는 독서해야 한다.


위대한 독서가들이 '발췌'와 '메모' 그리고 '초서'라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읽은 것을 기억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의 나는 독서모임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혼자 책을 읽으면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에 굳이 여러 사람의 생각을 하나하나 들어야 하는가’ 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혼자 읽는 책은 결국 고인 물과 같다. 내 안에 아무리 많은 물이 들어오더라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면 그 물은 썩어갈 것이다. 물이 돌고 돌면서 깨끗이 정화되듯이 우리의 생각도 돌고 돌면서 정화되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더라도 다른 사람과 대화조차 나누지 못한다면 그렇게 책을 읽는 시간들이 더 인생의 낭비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함께 읽은 것들을 나누면 내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부딪히기도 하고, 섞이기도 한다. 혹은 함께 만나서 엄청난 폭발력을 낼 때도있다. 그런 순간은 혼자 책을 읽으면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기적'이며, 억만금보다 소중한 시간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만의 성곽을 높게 쌓아 자신의 시야를 가리는 독서를 하면 안 된다. 책을 읽을수록 더 많은 창문이 생겨나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독서를 해야 한다.
사실 모든 독서활동이 나눔 독서'이다.


첫째는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레 저자와 생각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책을 읽는 동안 자신과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저자의 생각을 읽으며 '나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저자의 견해에 찬성하는지 혹은 반대하는지' 판단하기도 하는데, 이런 순간은 자기 자신과 생각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나눔 독서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 중요한 과정이 바로 세 번째 나눔 독서이다.

세 번째 나눔 독서는 책을 읽고, 또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책을 읽은 후에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눠보면, '같은 책을 읽었는데도 사람마다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읽고 나 혼자 내렸던 옳고 그름에 대한 정의가 산산이 부서질때도 있다. 그럼으로써 책 한 권을 통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내가 읽었으나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타인을 통해 배움으로써 책 한권 이상의 가치를 누릴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책 한 권을 나누는 것을 넘어 예상치 않은 성장을 얻는 '기적'과도 같은 것이다.

사람은 서로 만나야 하고, 생각과 감정을 나누어야 한다.

지루하고 힘들었던 다른 수업은 모두 잊었지만, 유독 '흥선 대원군에 대한 토론수업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 그 순간에 즐거움'을 느꼈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고 행복해지니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즐거우면 더 잘 기억난다. 즐거운 순간이 더 오래도록 남는다.

그러니 긴장감이 넘치는 내가 맞네, 니가 틀렸네'하는 토론보다, 서로에게 지적인 희열을 주는 토론을 해보자. 토론에서 '누가 맞고 틀리고, 누가 이겼고 졌고'를 따지지 말고, 모든 다양한 생각에서 배울 수 있다면 한 번의 토론에서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 많다. 그리고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더 잘 기억에 남는다니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유대인 학생들은 '왜'라는 질문을 하도록 교육받는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학교에서 돌아온 자녀에게 '오늘 학교에서 뭐 배웠니?,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어?라고 묻는 반면에 유태인의 어머니들은 '오늘 학교에서 무슨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다. 심지어 유태인들이 가는 도서관도 아주 특이하다. '예시바'로 불리는 도서관에서는 어느 누구도 혼자 공부할 수 없다. 유태인들에게 공부란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며 발전시키면서 책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므로 도서관은 항상 논쟁과 토론을 하느라 시끄럽다.

2만 명의 하버드 대학교 학생들의 30%가 유태인들임을 강조하고싶지 않다. 또 유태인들의 공부법이 정답이니, 우리도 따라해야 한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다만 생각을 나누면서 서로 배우는 유태인 학생들에 비해서, 매 순간 홀로 싸우는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공부가 외롭고, 괴롭지는 않은지 걱정된다. '아이들이 국가의 미래'라는데,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경쟁으로 가슴 졸이며 지내는 아이들보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배우는 아이들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토론식 공부법이 대한민국 교육문제를 모두 해결해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키워나가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토론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아이들 스스로 배운 것을 기억에 잘 남길 수있는 '효율적'인 공부법이다.


니체는 당신에게 묻는다. “지금의 나는 무엇인가? 낙타인가, 사자인가? 아니면 어린아이인가?”필자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사회의 목소리에 따라 살아왔듯이 그렇게 살아간 사람들이 수 없이 많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스스로 낙타인지 모르는 채 낙타로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진짜 낙타에게 미안하지만, 우리는 낙타로서 살아가면 안 된다. 사자처럼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외쳐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면 안 된다. 나아가 정말 당신이 어린아이처럼 행복해질 수 있는 순간을 찾아야 한다.

낙타에서 사자로 가는 순간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원하지 않는 일에 '아니오'라고 소리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자에서 어린아이가 되는 방법이다. 필자는 니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눈물은 흘렸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 어린아이처럼 행복해질 수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초원처럼 드넓은 자유를 가지게 되었는데, 도리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진짜 원하는 것을 찾는데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다만 독서는 놓지 않았는데 꾸준히 책을 읽으면서 여러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을 읽고 나누고, 책을 읽는 법을 나누는 것이다. 나혼자만 책을 읽고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독서를 아무리 많이 해도 그 생각을 나누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살아가야 한다.

마치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이 만든 담벼락만 높이는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아무리 깨끗하여도, 동네의 공기가 맑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읽으면 읽을수록 나눌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결국 주변과 함께 자신을 성장시키는 독서이다.


미래를 위해서는 지식과 정보가 아닌 새로운 시선, 즉 세계관이 바뀌어야 한다. 세계관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다. 빨간색 안경을 쓰고 있으면 세상이 빨갛게 보인다. 검은색 안경을 쓰고 있으면 세상이 검게 보인다. 이렇듯 자신의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지 않고는 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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