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즉흥적인 것이 아니었고, 나는 이 결심을 조금씩, 그러나 치밀하게 실천하고 있었다.

“왜 너는 삶이 안 힘들어? 어떻게 매일 그렇게 즐겁고 살 만할 수가 있어?”라는 질문에 신앙이 있는 사람은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하느님 빽.”이라고, 창조주 하느님이 내 옆에서 날 돕는데, 이 고통도 필요해서 주신 것인데, 버틸 만한 고통만 주시는데 힘든 것이 무엇인가? 지나갈 훈련인데.
어린아이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엄마에게 털어놓으면 그 짐은 가벼워진다. 왜냐하면 이제 그 짐은 내 것이 아니라 엄마 것이 되니까. 엄마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본다는 것을 아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엄마보다 강력한 '신'이 있다. 신께 기도한다. 털어놓는다. 어떤 짐은 털어놓음과 동시에 가벼워지고 어떤 짐은 뜻밖의 지혜로운 답을 얻어 쉽게 해결되기도 한다. 내 육아도 그랬다. 자식에 대한 기대는 낮추고 엄마인 나 자신에 대한 기대는 높였다. 기대가 너무 높아져 감당이 안 될 때는 기도로 묵상으로 돌아보고 묻는다. 이건 사랑이 아닌가요? 제 욕심인가요? 허영인가요? 위선인가요? 교만인가요?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글쓰기'이다. 그 어떤 고민도, 힘듦도, 죽을 것 같은 외로움도, 슬픔도 글로 옮기면 '객관화' 된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나와 대면케 된다. 마음의 짐을 객관화시키면 더 이상 힘들지 않다. 신께 털어놓아 자유로워지는 신앙인처럼, 글을 쓰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결론은 육아 일기를 쓰라는 소리? 육아 일기는 정말 모든 엄마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다. 아이에 대한 사랑은 커지고 육아의 짐은 가벼워진다.
왜 나는 다들 힘들다는 육아와 엄마표 영어가 힘들지 않을까?
신앙과 글쓰기
너무나도 사적인 이야기이지만, 나의 정체성은 종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내 육체는 체력이 받쳐주었고, 내 정신은 종교가 굳건하게 해주었다. 지금도 친정 엄마에게 감사한 것은 어린 시절 나에게 '종교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은 것'이다.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기댈 수 있는 신앙의 씨앗을 뿌려주고, 집요하게 주말마다 나를 성당으로 끌고 간 엄마의 '애씀'이 감사하다. 어릴 때는 만화 <캔디캔디>를 포기하고 성당 가서 미사 드리는 것이 어찌나 짜증나고 싫었던지.
신앙이 좋은 점은 마음의 때, 찌꺼기, 슬픔, 부정적 감정들을 수시로 청소할 기회를 끊임없이 준다는 것이다. 매주 미사를 통해, 새벽 기도를 통해, 성경말씀을 통해, 말 없이 침잠하는 침묵 속 묵상을 통해, 잠들기 전에 나의 하루와 나의 언행을 돌아보게 하는 저녁 기도를 통해, 새로운 아침을 여는 기도를 통해. “왜 너는 삶이 안 힘들어? 어떻게 매일 그렇게 즐겁고 살 만할 수가 있어?”라는 질문에 신앙이 있는 사람은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하느님 빽”이라고. 창조주 하느님이 내 옆에서 날 돕는데, 이 고통도 필요해서 주신 것인데, 버틸 만한 고통만 주시는데 힘든 것이 무엇인가? 지나갈 훈련인데.
아이가 원하는 대로 문자 교육 방향을 잡아야지, '학교 가기 전까지는 절대로 문자 노출 안 되게 할 거야'라든지 '무슨 일이 있어도 세 돌 전에 한글을 뗄 수 있도록 하겠어.라든지 극단적인 방식은 매우 위험하다. 많은 걸 잃게 된다. 내 아이를 잘 관찰하면서 내 아이에게 맞춰야 옳다.
글자에 눈을 뜨면 심봉사가 눈 뜨듯 아이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지적 호기심이 증폭되면서 책에 푹 빠지게 된다.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는 아이들도 있고 닥치는 대로 새로운 책을 쌓아놓고 읽는 아이들도 있다.
하다못해 아주 시시한 이야기도 괜찮다.
“어제 엄마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말이야~"를 시작으로 병원에서 일어나는 나쁜 범죄, 약자에 대한 배려 등등 사회적인 이야기까지 대화는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 사소한 일상이지만 아이는 집중해서 듣고, 오늘 하루를 무사히 지낸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가를 배울 수 있다.
내 엄마표 영어는 어쩌면 이 종착역을 향해 달려온 것인지도 모른다. 대화가 끊이지 않는 엄마와 자식 관계. 물론 제 방에 문 닫고 들어가는 사춘기가 빨리 오긴 해도, 중요한 순간에는 “엄마, 그런데 있잖아.” 하고 다가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관계. 이 관계를 만들려고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온 것 같다. 영어 몇 마디 하고 영어로 대학 강의 듣는 것보다 더 귀한 열매다. 엄마표 영어 17년이 지나니, 비로소 그 열매가 보인다.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열매의 달콤함을 많은 엄마들과 함께 맛본다면 멋지겠다.
엄마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아이가 읽고 듣고 쓰는 엄마표 영어였다면, 1년도 못 가서 '녹다운'이다. 나는 꿈이 아주 소박한 사람이고, 게으른 몽상가다. 애초에 엄마표 영어를 시작할 때 바랐던 것도 '영어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영어가 편한 아이'였다. '초등 저학년 때 영어책 읽고, CNN 뉴스 듣고, 자기 생각을 영어로 끄적거릴 수 있는 수준만 되어도 땡큐지!'라는 생각이었다. 영어로 유창하게 말하는 건 기대도 안 했고, 큰 의미도 두지 않았다. 영어 인풋이 많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아웃풋, 즉 영어 입이 트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오로지 17년 동안 고수한 원칙은 단 하나, '엄마도 아이도 행복하고 즐거운 영어'였다. 이것만 잘 지켜도 “엄마표 영어 17년, 참 쉽죠잉!" 하고 말할 수 있다. 17년 동안 이 원칙 하나로 아이와 침대에서 함께 영어책 읽고, 거실에서 영어 노래 들으며 춤추고, 영어 놀이를 신나게 즐겼다.
그 결과,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 아이들 영어 실력은 모국어와 함께 쑥쑥 자랄 수 있었다. 나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영어 때문에 엄마도 아이도 괴로울 수밖에 없는 시대다. 난 이런 때일수록 엄미들이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보기를 바란다. 영어는 수단일 뿐이다.모국어처럼 편하게 읽고, 쓰고 들으면 그만이다. 말하기는 약간의 기술적 훈련이 필요한데, '영어 실력'만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논리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콘텐츠, '어떤 생각을 담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것은 단순히 겉으로만 보이는 영어 발음 유창성, 영어 단어 많이 외우기보다 언어 능력 향상에 더 많은 도움을 주는 요소들이다.
아이의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영어보다는 오히려 모국어 독서와 가족 대화에 힘을 써야 한다. 이는 영어 점수를 올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문제다. 논리력, 사고력을 갖추면 언어 능력이 향상되는데, 그럼 당연히 영어 공부도 술술 풀리기 때문이다. 남들 한다고 똑같이 따라하지 말고, 문제의 본질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더 이상 '영어 점수 높은 아이'에만 몰입하지 말고, '영어가 편한 아이' 를 키우는 데에 집중하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영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영어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쓰자. 10세 이전까지만 영어책 읽어주고, 영어 노래 들려주고 영어로 재미있는 놀이를 꾸준히 해보자. 이것만 해도 내 아이, '영어 앞에 기죽지 않고 당당한 아이'로 키울 수 있다. 영어가 편한 아이가 진짜 '영어를 잘하는 아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17년 동안 엄마표 영어를 실천해오면서 얻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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