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공부에 미친 사람들 (김병완)

쭈니의아빠 2023. 3. 2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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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에게는 공손홍과 같이 '공부를 지속할 수 있었던 한 가지 원동력'이 있었다. 바로 '공부하는 기쁨'이었다. 공부를 하며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세상의 이치를 이해할 때 돈이나 명예를 얻을 때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엄청난 만족감과 희열을 느꼈다. 이 온전한 공부의 기쁨이 나를 10년간 행복한 공부의 길로 이끌었고, 나락으로 떨어졌던 공손홍을 승상의 자리에까지 올려준 셈이다.

 

최근에 나온 공부와 관련한 책들을 살펴보면, 공손홍과 내가 느꼈던 '공부의 기쁨'에 대해 논하는 책을 찾기가 어렵다. 단기간에 성적을 올리는 방법이나 시험에 합격하는 비법, 맹목적으로 공부의 신이 되는 경지에 대해 떠벌리는 책만 보일 뿐 정작 공부의 본질적 목적이라 할 수 있는 '공부의 기쁨'을 다루는 책은 없다. 물론 실용적인 공부법을 알려주는 책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책은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있지만 '자발적으로', '오래', '꾸준히' 공부를 즐기도록 만들지는 못한다. 그런데 왜 이런 책들이 유행하게 된 걸까? 어쩌다 사람들은 이런 책들을 보며 공부를 '오해'하게 되었을까?

공자는 스스로를 위대한 학자로 여기지 않았다. 다만 공부의 기쁨에 미쳐, 늙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 학생으로 여겼다.
물론 공부가 단순한 쾌락이나 즐거움만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자 역시 이를 강하게 경계했다. 궁극적으로 공자에게 '공부'라는 활동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어진 마음, 즉 '인'을 형성하는 실천의 과정이었다.


즉, 공자에게 공부란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고 익히는 기쁨인 동시에 인간다운 사람이 되는 예의 실천, 그리고 인의 실천까지도 모두 포함하는 활동이었다.

공자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가 아닌,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완성하고 주체적인 삶을 이루어나가는 공부를 지향했다. 그리고 이를 '위기지학’이라 표현했다. 남에게 허세를 떨며 자랑하기 위한 공부는 절대로 즐겁지 않고, 그러므로 오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공자는 알고 있었다.

남이 억지로 시켜서 하는 공부나 오로지 성공만을 목표로 하는 공부는 온전히 나를 성장시킬 수 없다.

얼마나 많이 배우고 알고 있느냐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공부한 것이 과연 내 삶에 얼마나 깊게 뿌리내려 있고, 행동으로 나타나며 완성되었느냐다. 단순히 배운 게 많다고 하여 혹은 학벌이 높다고 하여 우리는 그 사람을 우러러보지 않는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 누군가에게 인생의 본보기가 될 때 진정으로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이다. 공자와 맹자의 삶은 지행합일의 표본이자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공부의 자세다.


그의 나이는 만으로 18세였고 당시 이 분야의 논문을 게재한 전문 연구자는 슈뢰딩거와 티링밖에 없었다. 자신의 재능과 관심사를 일찌감치 발견한 파올리는 '자신만의 공부법'을 찾아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어린 나이에 전문 물리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만약 그가 동일한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대학 졸업장을 따야만 '학업'을 인정해 주는 한국 사회에서 공부했다면, 이처럼 위대한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똑똑한 영재들을 자신의 개성과 취미에 맞게 자유롭게 공부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폐쇄적인 사회에서는 10대가 논문을 쓰는 일조차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손의 지문이 모두 다르듯 공부법도 다르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완벽한 공부법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다양한 공부 방법과 습관을 이리저리 재조합해 자신에게 가장 어올리는 '공부법'을 재구성해야 한다. 파울리는 그것을 해냈다.


일단 '왜 공부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스스로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책을 읽도록 유도한다. 억지로 시키면 그나마 갖고 있던 학습 의지마저 사라지고, 결국에는 공부와 담을 쌓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핀란드에는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가 많지 않다.


진짜 공부가 시작되면 자신의 무지가 보이고, 아집이 보이며, 편협된 생각들이 보인다. 끝없는 자만에 빠졌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고 비뚤어진 자아의 실체가 정확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렇게 억눌리고 뒤틀린 과거의 나를 뛰어넘어 한 단계 더 성장하게끔 이끌어주는 수단이 바로 공부다.

프랑스의 실존주의자 장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는 1943년에 출간한 자신의 책 『존재와 무』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주어진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따라 또 다른 모습을 갖는다.’


우리 세대 최고의 발견은 인간이 마음가짐을 바꾸면 삶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다.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 나라와 조직은 망한다. 그리고 이는 개인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꿈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시련과 역경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대처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럴 때 우리의 뇌 역시 다르게 반응한다. 꿈이 있을 때는 뇌가 항상 깨어 있다. 현실은 비록 고통스럽지만 밝은 미래를 상상하기 때문에 '현실을 견디는 힘'이 계속 길러진다.
꿈이 없는 사람은 같은 역경도 더욱 고통스럽게 받아들인다.
은퇴 후 제대로 된 비전이 설계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3년 안에 사망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었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세르게이 브린 Sergey Brin과 래리 페이지 Lary Page가 차세대 검색 엔진을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을 여러 대기업에 소개했을 때에도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도대체 그런 게 왜 필요하죠? 지금도 잘 돌아가고 있는데”라며 그들의 아이디어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직접 개발한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우선적으로 보여준다'는 핵심 기술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 두 젊은이는 결국 검색으로 세상을 바꾼 '구글 Google'이라는 혁명적 기업을 탄생시켰다.

『웹 진화론』의 저자이자 IT 학자 우메다 모치오梅田望夫는 세상을 바꾸는 주요 요인을 인터넷과 오픈 소스, 치프혁명 Cheaprevolution(IT의 성능은 점점 좋아지지만 비용은 무료화 또는 하락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대를 뛰어념는 생각을 하고 그것을 끝내 실현해 내는 힘은 단연코 '공부'다. 공부하지 않으면 어제의 내가 생각한 사고의 틀 안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와 동일한 생각을 평생 되풀이할 뿐이다. 진정 미쳐야 미친다고 하지 않던가?

미친 듯이 한 분야에 몰두한 '공부에 미친 사람들'은 엉뚱한 상상을 멈추지 않았다. 남다른 생각을 품었던 공부의 거인들처럼 우리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전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때로는 엉뚱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성취해야 한다. 큰 꿈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공부고, 그 꿈을 이룰 때까지 밀어붙일 수 있도록 해주는 추진력 또한 공부다. 공부를 통해 자신과 세상의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탈출해야 한다.

자전거를 평지에서만 타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비탈길에서도 타보겠다는 누군가의 엉뚱한 발상이 '산악자전거'를 탄생시켰다. 얼음이 있어야만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불만이 있던 누군가는 겨울이 아니어도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는 염원으로 '인라인스케이트'를 발명했다. 또 누군가는 스키보다 더 짜릿하고 역동적으로 설원 위를 질주할 방법을 고민하던 끝에 널 뺀 지를 하나로 붙인 '스노보드'를 만들어냈다.

실력도 있지만 순간의 실수로 넘어져 평생 쌓아 올린 탑을 무너뜨리고 만 사람이 많다. 우리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세상의 시류에 편승하는 길을 택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셈이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랠프월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은 자신의 에세이 『자기 신뢰』에서 “스스로의 삶은 스스로 선택하면서 살아야 한다”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세상의 많은 사람이 너무나도 쉬운 방법, 편한 방법, 시류에 따라가는 방법을 선택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무작정 누군가를 따라 살아가기보다는 직접 선택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무심코 선택했던 작은 행동들이며, 이것이 반복되면 습관으로 굳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는 “우리의 삶은 우리가 반복적으로 해왔던 행동의 결과 그 자체이며, 그것은 사실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라고 말했다.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행동 역시 우리가 선택한 것이다. 이런 작은 습관이 모여 미래의 나를 만든다. 우리가 모든 순간에 올바르게 선택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통해 자신의 주관과 비전을 분명하게 세워두어야 할 것이다.

한편 많은 사람이 삶의 정점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가 고통을 받기도 한다. 반대로 누군가 나에게 잘못을 했을 때 우리는 용서를 선택하는 대신 분노와 복수를 선택한다. 분노와 복수가 아닌 용서를 택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문제다. 용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수련과 공부를 통해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용서를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을 진정 낮추게 하는 것이 공부다. 눈앞의 이익과 뇌물에 눈이 멀어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그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그러므로 부디 자신을 낮추고 내려놓을 줄 아는 공부를 하기 바란다. 알면 알수록 고개를 숙인 공자와 길 가는 아이에게도 가르침을 구했던 박지원처럼 욕심을 버리는 공부를 하기 바란다.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어떤 사람도 고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왜 인간의 삶은 고난의 연속인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고난을 딛고 일어섰을 때 비로소 만나게 될 기쁨과 가치는 매우 크다는 점이다. 역경을 이겨낸 사람은 그보다 더 큰 삶을 꿈꿀 수 있다.


영국의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 rnold Toynbec가 주정한 역정설에서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문명, 모든 문화는 역경과 고난을 딛고 올라서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이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돛단배는 강풍으로 인해 더 빨리 갈 수도, 혹은 침몰할 수도 있다. 인생 또한 항해와 같다. 공부를 통해 자신을 성장시킨 사람은 위기를 기회로 본다. 그대로 침몰하지 않고 더 빨리 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 실패를 통한 교훈은 또 다른 공부이며 더 큰 그릇이 되기 위한 재료다.


역경이라는 것이 꼭 거대한 해일처럼 대재앙의 모습을 하고 우리 앞에 출현하는 것은 아니다. 삶의 수단이 변하고 일상의 조건이 바뀌는 것 자체가 큰 역경일 수 있다. 농경 시대는 3000여 년동안 우리의 삶을 이끌어왔다. 산업 시대는 200년 동안 인류의 삶을 이끌어왔다. 정보화 시대는 5년 안에 많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나는 폭풍이 두렵지 않다.
나의 배로 항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까.
- 헬렌 켈러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차원적으로 말하자면 동물적인 삶과 거리가 먼 것이다. 이때 동물적인 삶이란 무엇일까? 본능에 의존해서 살아가되, 이성과 윤리 그리고 가치와 목표를 추구하지 않는 삶이다. 인간은 공부하지만 동물은 공부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을 동물과 가르는 기준은 오직 공부다.


삶 속에서 우리를 진정으로 옭아매는 것은 무엇일까? 삶에 대한 집착, 성공을 향한 야망, 실패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염려, 건강에 대한 걱정, 인간관계의 불화 등 수없이 부닥치는 난관 속에서 우리는 나약하고 완전하지 못한 존재임을 깨달아간다. 그리고 그 틈에서 아등바등 얽매여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자각하게 된다.


미국의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 역시 “하루 종일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모습이 정해진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지 말고, 나약함을 뛰어넘은 강한 자신을 떠올려야 한다. 그것이 곧 공부다. 환경 때문에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이런 상황에서는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다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제임스 앨런의 말을 빌려 이야기해주고 싶다.
상황이 인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의 내면이 상황으로 드러나는 것뿐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땅 위에 돋아난 풀 한 포기에도 다 존재하는 목적이 있다.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도 자기 몫을 한다. 하물며 인간은 어떠할까? 인간에게도 모두 제각각의 고유한 소명과 역할이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소명을 찾아야만 즐겁고 알찬 인생을 살 수 있다. 그것을 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공부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려고 태어났는가? 그것을 왜 해야 하는가?


공부는 내 삶의 목적과 주어진 몫을 깨닫게 해 준다. 설사 우연히 나의 소명을 발견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꾸준히 감당해 낼 힘과 능력, 용기와 인격을 갖추지 못하면 즉 충분히 공부하지 않았다면 그 몫을 지속하기가 어렵다.

독일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 프로야구 내야수로 활약했고, 30세가 되기 전에 종교에 귀의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복음전도사가 된 빌리 선데이 Billy Sunday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은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목적이 없어서 실패한다. 그의 말처럼 목적이 없으면 실패하기 쉽다.


위대한 목적을 위해 살아갈 때진정한 삶의 기쁨이 찾아온다. 목적은 세상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이기적인 슬픔과 아픔의 덩어리보다 더 강력한 힘이 된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만족보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무리 내가 삶의 목적을 세우고 열심히 공부하며 살아도 주변의 평가가 좋지 못하다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언제나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도록 노력하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옳지 않은 말이다.

심리학에는 '대상조회 Object-referral'라는 용어가 있다. 참 자아가 아닌 다양한 외부 대상에 영향을 받는 마음 상태를 의미한다. 사람이 대상조회에 빠져 있으면 언제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즉, 초점이 타인의 시선에 갇혀 있다. 그 때문에 타인의 말 한마디에도 흔들리고, 자신의 주장이나 소신을 쉽게 굽히기도 한다. 타인에 대한 의식이 너무 강한 나머지 소문에 얽매여 살기도 한다. 과연 이러한 삶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상조회의 반대 개념인 '자기 조회'는 외부 대상이 아닌 참 자아에 초점을 맞추는 마음 상태다. 우리의 삶이 흔들리는 돛단배와 같지 않으려면 세상에서 단단히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는 대상조회의 삶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치와 목표에 초점을 맞추는 자기 조회의 삶을 살아야 한다.

수십 년간 수천 명을 상담하고 치료한 미국의 심리학자 루이스헤이 Louise Hay는 현대인의 질병을 이렇게 정의했다.

질병은 마음의 상태를 반영한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것이야말로 만병의 근원이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을 튼튼하게 다스려야 한다. 어떻게 해야 내면을 단단하게 다지고 더 높은 경지로 드높일 수 있을까? 바로 통찰과 반성과 비움과 몰입이다.


바로 '뇌가 좋아하고 흥분하는 방식'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핀란드인과 유대인과 인도인의 공통점은 뇌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활성화시키는 공부를 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다.


억지 노력으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 시작할 때 위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시작하면 위대해진다.

무작정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부는 '즐기는 자'의 것이다. 재미가 있어야 효과도 배가 되기 때문이다. 흔히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즐기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재미가 있어야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공부를 즐길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공부 자체에 몰입해야만 공부도 얻고, 성과도 얻고, 자아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공부를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정답은 스스로 공부와 '친해지는 것'이다.

닥친 일에 흔들리거나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단기적인 성패가 아닌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그 속에서 공부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공부해야 하는지,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그렇다면 참된 공부란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야 한다. 자신만의 확실한 답을 찾을 때 그제야 비로소 공부가 재미있어진다. 괴롭고 재미없고 하기 싫은 일이 아니라. 고맙고 즐겁고 하고 싶은 일로 바뀐다.


왜 그럴까? 바로 '보상 심리' 때문이다. 자신이 스스로 찾아낸 '공부의 이유'를 달성하면 스스로가 뿌듯하고 대견해진다.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느낄 때마다 공부에 감사하는 마음까지 생겨난다. 모르고 있던 세계와 새로운 지식의 바다에 닿을 때 우리의 뇌 속에서는 쾌감 물질이 생성되고, 이때 우리는 공부의 참맛을 느끼는 몰입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단순히 출세만을 목표로 한 공부로는 결코 느끼지 못할 기쁨을 느끼게 된다.

현존하는 최고의 경영 사상가이자 작가인 짐 콜린스 Jim Collins의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도 이러한 공부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왜 좋은 기업들이 위대한 기업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에 짐 콜린스는 “이미 좋은 기업은 그럭저럭 알아서 굴러가기 때문에 더 높은 목표를 추구하지 않고 그 위치에서 안주한다"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그럭저럭 좋은 간판. 좋은 직장, 좋은 환경. 좋은 성적, 좋은 학위는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순 있지만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달성하고 나면 그 자리에서 만족하며 게으르고 나태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매 순간 더 높은 목표를 꿈꾸고 새로운 지식을 갈망하는 사람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뇌를 기쁘게 만들기 때문에 심리적인 보상까지 얻게 된다. 꿈이 실현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점차 자라나게 된다.

이탈리아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천천히 가는 사람이 길게, 또 멀리 간다.

또 고사성어 중에 '욕속부달하速不達'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너무 빨리 가고자 욕심을 내면 오히려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다. 세상만을 목적으로 한 공부가 실패하는 이유는 마음이 조급해지고 사입이 생겨 진리를 놓치기 때문이다. 공부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질주하다가 제 풀에 지쳐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공부는 100미터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이다. 적절한 안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하면 곧 고지가 보인다는 생각에 내달리는 사람들은 그저 남들보다 빨리, 높이 올라가려고 자기 페이스를 잃고 만다. 아까운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할 뿐이다.

공부를 통해 저절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은 단연 기쁨이다. 그리고 그 길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한 걸음씩 걸어갈 수 있는 초연함과 담대함을 갖춰라. 이것이 앞서 살펴본 공부의 거장들이 모두 갖춘 자질이었다.

『톰 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 Mark Twain은 “성공의 비결은 당신의 직업 vocation을 휴가 vacation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부 역시 이왕이면 괴로운 노동이 아닌 즐거운 놀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넬슨 만델라 Nelson Mandela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당장 습관과 사고방식을 바꾸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한 번도 도전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방법은 많다. 서두르지 말되 의지만 강하게 갖춘다면 벌써 찾은 것이나 다름없다.

뇌가 좋아하는 일을 반복할수록 뇌의 기능은 점점 깨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뇌도 성장시킬 수 있다. 단순히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면서 일하는 사람을 당하지 못한다. 공부든 일이든 어느 정도까지는 억지로 할 수 있어도,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결코 그 이상의 단계까지는 나아갈 수 없다.


더불어 뇌에 지속적으로 자극을 주다 보면 '축삭돌기' 끝에 나와있는 가지들이 더 많아지고 길이도 길어진다. 축삭돌기란 뉴런을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다른 뉴런과 신호를 주고받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처럼 정보를 매개하는 돌기들이 점차 많아지고 길어지면 머리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정보를 처리하게 된다. 좀 더 쉽게 비유하자면 서로 떨어진 두 땅에 긴 다리를 여러 개 놓아 교통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뇌를 지속적으로 자극해 온 사람들은 더 적은 에너지로도 더 많은 공부를 해낼 수 있다.

시작할 때는 속도도 나지 않고 돌아서면 봤던 내용을 잊어버리기 일쑤지만, 하면 할수록 속도가 붙고 기억력도 강화된다. 그러니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못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매번 공부에 실패하는 이유는 뇌를 기쁘게 만드는 공부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뇌의 특성과 메커니즘을 무시한 채 억지로 공부하려고 하니 뇌가 공부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머리가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몸과 마음, 그리고 뇌는 서로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몸과 마음의 건강 상태가 뇌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공부의 효율까지도 좌우하는 것이다. 그래서 몸을 움직이며 근육을 사용하고,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뇌의 기능이 발달되어 공부를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뇌를 생각할 때  '논리'나 '이성'과 같은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뇌야말로 인간의 신체 중에서 가장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기관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뇌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 즉 '기분'이다. 최근 뇌과학자들이 새롭게 밝혀낸 사실은 뇌가 발달할수록 기분이 우리의 사고를 더욱 강력하게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공부와 연결하여 설명하면, 기분이 좋을 때 공부도 잘되고 학습효과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사고적 뇌, 동기적 뇌, 사회적 뇌, 신체적 뇌, 관계적 뇌 등으로 나뉜다. 이들은 서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상호작용하는데 특히 '정서적 뇌'가 공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만약 불행한 일을 겪거나 불쾌한 상황에 처하면 인간의 뇌를 지배하는 '정서적 뇌'가 활동을 거부한다. 정서적으로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울적해진 '정서적 뇌'가 근처에 있는 '인지적 뇌', '사고적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공부를 회피하게끔 만든다. 이는 정서를 담당하는 뇌 부위와 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위치적으로 매우 가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억을 주관하는 뇌의 부위는 '해마'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 '편도체'라고 불리는 신경 집합체가 있다. 이 편도체가 인간의 온갖 정서를 관장하고 있다. 긍정적인 생각은 뇌의 정서를 담당하는 편도체에 좋은 자극을 주고, 활성화된 편도체는 바로 옆에 있는 해마를 자극해 기억 효과를 촉진시킨다. 이처럼 '정서적 뇌'가 '사고적 뇌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뇌과학 및 심리학에서는 '하향이동 Downshifting'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오히려 성적이 떨어졌다. 오랫동안 공부했는데도 점수가 잘 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금까지 해오던 공부 방법을 싹 버리고 다시 시작했다. 한 달 만에 성적이 껑충 뛰었다.
바로 온몸을 사용해 공부한 덕분이었다. 듣기 파트에서 틀린 문제를 반드시 손으로 노트에 직접 적었다. 손으로 쓰면서 뇌가 기억하게 했다. 출퇴근할 때는 오답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소리 내어 읽었다. 이어폰을 무작정 귀에 꽂고 다니던 방법을 버리고, 이제는 노트에 직접 적은 틀린 문제를 입으로 크게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저 행동에 옮기면서 공부했다. 그런 방법으로 딱 한 달을 했다.

이처럼 자신이 습득한 지식을 사람들 앞에서 쓰고 말하면서 손짓으로 설명해 보는 과정이 훌륭한 공부가 될 수 있다. 공부가 잘 안 될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해주거나, 운동장이나 골목길을 걸으면서 공부한 내용을 떠올려보는 것도 효과가 있다. 손으로 쓰면서, 발로 걸으면서, 입으로 말하면서, 귀로 들으면서 공부하면 더 잘 외워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강제로 외우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앞에서도 자세히 설명했지만, 암기는 장기적인 기억 효과가 없다. 아기들이 말하기 시작할 때는 온몸으로 듣고, 말하고, 따라 하고, 걸어 다니고 만지면서 언어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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