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기적의 고전 독서법-김병완

쭈니의아빠 2023. 3. 2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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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독서를 하면 왜 인생이 달라질까?

이 질문을 통해 고전이 다른 일반서와 다른 점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고전은 지식이나 정보가 담긴 책이 아니라 위대한 지혜와 통찰력이 담긴 책이기 때문이다.


지식이나 정보가 담긴 책은 고전이 될 수 없다. 학교를 다니면 접하게 되는 수많은 교과서는 지식과 정보가 담겨 있다. 과학 지식, 역사 지식, 수학 지식 등이 담겨 있는 그런 책을 두고 우리는 고전이라고 하지 않는다.

지식과 정보는 인간이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하나의 수단이 되어 버렸다. 과거에는 사냥하는 방법, 숲에서 잠을 자는 방법, 독충을 피하는 방법,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는 방법 등이 생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변화를 거듭한 끝에 지식과 정보 사회에서는 지식과 정보가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삶의 수단이 되었고, 이제는 지식과 정보보다 지혜와 통찰력이 그 어떤 시대보다도 더 중요한 삶의 수단이 되었다.

한마디로 인간과 세상이 모두 성장하고 도약하여, 매우 높은 수준까지 올라와 버렸다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은 변함없이 자전거를 타고 경주를 하고 있는 데,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갑자기 스포츠카로 갈아타는 것과 같은 현상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은 걸어서 가는 것과 같고, 일반 실용서만 읽는 것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과 같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스포츠카를 타고 가는 것과 같다.

필자는 강의를 할 때마다 자전거와 KTX 이야기를 하곤 한다. 부산에서 출발해서 서울까지 가는 경주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가지만, 필자는 KTX를 타고 간다. 누가 더 빨리 도착할까? 당연히 KTX를 탄 사람이다.

고전이란 스포츠카나 KTX와 같은 것이다. KTX는 인류의 문명과 기술이 모두 응축이 되어 시속 200Km 이상 달릴 수 있는 고속의 기차이다. 어떤 것을 타느냐에 따라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게 달라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종류의 책을 읽느냐에 따라 도약하고 성장하느냐가 결정 날 뿐만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 소모도 크게 달라진다.


일반 실용서 작가들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어떻게 어떻게 해서 자신이 성공하게 되었다는 것을 자신있게 이야기한다. 혹은 독서법이나 공부법에 대해서도 자신의 경험과 자신이 읽고 배운 지식을 통합하여 해법을 제시해준다.

바로 이것이 일반 실용서의 한계이다. 쉽고 빠르게 독자들이 해법을 얻어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필자도 이러한 책들을 많이 집필했다. 물론 이러한 책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책들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를 아예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이러한 책들을 쓰고, 읽는 사람들이 훨씬 더 잘 사는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이러한 책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실용서를 많이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고전에 대한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일반 실용서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몇 단계 더 성장을 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힐 때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 돌파구가 될 수 있는 책, 진퇴양난에 빠졌을 때 길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책, 그런 책이 바로 고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은 읽어도 되고 안 읽어도 되는 책이 아니다.


일반 실용서는 읽게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거나 성공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을 귀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절대로 말이다. 그런데 고전을 읽게 되면 가난하든, 부자든 상관없이 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고전의 힘이며, 동시에 당신이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준이 매우 높은 행위인 것이다.

왜 책을 읽으면 가난한 사람들이 부유해지고, 부유한 사람들은 귀해지는 것일까?

부자가 된 사람들은 모두 사고력과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귀해진 사람들은 모두 올바른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뇌물이나 성추행과 같은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정계에서 쫓겨나는 고위직 공무원과는 차원이 다를만큼 국민들의 존경을 받게 된다.

그런데 사고력과 판단력, 올바른 마음은 모두 책을 통해 기를 수 있다. 책 중에서도 고전을 통해서 기를 수 있다.


고전은 읽는 이들의 사고방식과 사고의 질을 달라지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 고전을 읽으면 사고력이 향상된다. 고전을 그저 교양이나 쌓고, 성공하고 출세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게 되면, 이러한 고전의 남다른 힘을 맛볼 수 없다.

성공하고 출세하기 위해 사는 삶은 그저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고전은 그저 살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남다른 책이다. 고전이 일반서와 가장 다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고전은 왜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남다른 책이 되었을까?

고전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고전은 다른 말로 하면 정답이 없는 책이다. 하지만 일반 실용서는 정답이 있다. 그리고 그 정답이 그 책의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고전은 정답이 없기 때문에 주된 내용이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하고 또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것이다. 이것이 고전의 비밀이다. 그런데 고전은 수준낮은 일상사에 대한 생각이나 평범한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생각, 수준의 차원이 다르다.


당신에게 삶은 어느정도 가치가 있는 것인가?

단 한 번뿐인 인생이기 때문에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무한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인생이라도 격무와 생활고에 시달린다면 어떨까?

왜 사는지도 알지 못한 채 일하는 기계처럼 매일 일만 하고 누군가가 시키는 일만 하면서 산다면 어떨까?

무한한 가치가 있는 인생을 살면서 스스로 그 가치를 땅바닥에까지 떨어뜨리면서 살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사람은 본인이다. 당신이 단 1년 만이라도 고전에 미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 1년 만이라도 고전에 미친다면, 최소한 당신의 인생을 평균 이상으로 도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안 하면 마음은 잡초로 뒤덮이고, 세상은 캄캄해진다. 그래서 책을 읽고 지식을 찾는다. 지식이 길을 밝혀줄 것이니 오직 그때라야 정신의 뿌리가 튼튼해지고 활동이 균형을 얻는다.


고전 독서를 하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욕심과 집착으로 얼룩지게 되고, 그래서 우리의 삶의 환경은 어두워지고, 우둔해지게 된다. 캄캄해진 세상에서 눈앞의 욕심만 채우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게 된다는 말이다.고전 독서를 통해 얻은 지혜가 인생의 길을 밝혀주고,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해주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는 말이다.


고전을 읽지 않게 되면, 어제까지 살았던 우리의 닫힌 삶의 방식대로 평생 살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삶이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하루하루 어두운 밤길을 등불도 없이 걸어가고 있는 것과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고전은 삶의 등불이 되어 주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쳐준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여기서 더 나가서 많이 생각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주는 그런 책이 좋은 책임을 알아야 한다.

위대한 작가나 영웅이나 박사라고 해서 정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큰 자만이다. 어떤 위대한 작가도 정답을 알고 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정답이란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답이 있는 그런 책은 절대로 조심해야 한다. 고전의 위대함은 정답이 없고, 위대한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을 읽어라는 것이다. 고전은 기본적으로 많이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고전을 가까이 하는 자는 조급하거나 근시안적인 시야를 가진 상태에서 벗어나 느긋해 질 수 있고, 많은 위기 상황에서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올바른 방법으로 책을 읽어야 하고, 무엇보다 의식이 달라질 수 있는 책을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의식이 달라지는 책은 어떤 책인가?

가장 정확한 답은 지식을 채우는 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물통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 새로운 의식을 가지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채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밖으로 확장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그런 책이 되기 위해서는 지식만 가득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게 하고, 자극을 주게 하고, 가볍게 하는 것을 뛰어넘어,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드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이런 책을 발견하게 되면, 그리고 읽게 되면 세상을 다 가진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의식이 어제의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책을 통해 달라 진 사람들은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조차도 부럽지 않다.

괸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다고 장자는 말한 적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읽은 책의 내용이 심오하지 않으면 의식을 확장시킬 수 없다. 그래서 잡지나 신문이나 뉴스를 아무리 봐도 의식이 확장되지 않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의식을 확장시켜주는 책은 바로 이런 책이다.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와 같은 책 말이다.

백 번이라도 더 강조하고 반복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 말이다. 자신의 의식을 확장시켜 주는 책을 읽어야한다는 것이다. 의식을 확장시켜 주는 책, 즉 자신의 내면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작고 좁은 의식을 깨는 그런 도끼와 같은 책들을 읽어야 한다.


스키는 반드시 자신의 수준에 맞는 슬로프에서 탈 때 가장 재미있고 안전할 뿐만 아니라 실력도 더욱 더 빨리 향상될 수 있다.

책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을 읽을 때 가장 재미있고 즐거울 뿐만 아니라 독서 효과도 가장 좋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타인에게 책을 추천하는 것이 무척 힘이 들고 어려운 것이며, 특히 누군가가 자신이 읽어서 좋고 유익하다고 해서 무조건 타인에게 추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필자는 5년 전, 즉 직장 생활을 할 때에는 절대로 책을 쓸 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책을 쓴다는 것을 꿈에서도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놀라운 세 가지 사실들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책을 쓰는 작가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놀라운 세 가지 사실들은 공교롭게도 1993년도에 앤더스 에릭손 교수가 천재들에 대해 기념비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했을 때, 그 결과와 매우 흡사하다.

그 세 가지 사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자신의 한계 수준에 매일 도달하는 제대로 된 연습 방법.
2. 1만시간이라는 적지 않은 연습 시간.
3. 집중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의식.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과 3년, 즉 하루에 열 시간이라고 잡아도 3년이면 1만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연습 시간, 그리고 필자만이 가지고 있었던 조금은 남다른 의식이라는 세 가지 요소이다.


책을 읽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눈으로만 책을 읽는 습관'이다. 그래서 속독법은 필자가 생각하기에 최악의 독서법 중의 하나일 뿐이다.

빨리, 많이, 눈으로만 읽는 속독법은 우리의 뇌가 마음껏 뛰어놀고 상상하고 사유하고 창조하고 무엇인가를 발명해 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좀 체 주지 않는다. 눈으로 읽고 이해하고 습득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만약에 필자가 3년 동안 속독법으로 책을 읽었다면 과연 지금처럼 많은 책들을 쓸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답은 불을 보듯이 너무나 분명하다. 절대로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지식이나 정보를 많이 습득해서 머릿속에 집어넣는다고 해서 책을 많이 빨리 쓸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책을 많이 빨리 쓸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많은 사유를 했느냐 일 것이다. 결국 생각의 결과물들이 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속독법은 천재가 아닌 이상 그렇게 짧은 시간 많은 생각을 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독서법이다.

이런 독서법과 정반대되는 독서법 중의 하나가 초서 독서법이다. 초서 독서법은 책을 읽는 것이 20%이고 나머지가 80%이다. 그래서 한 마디로 책 한 권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시간이 엄청 많이 걸린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외면되어 온 것인지도 모른다.

필자는 운이 좋게도, 초서 독서법으로 독서를 하게 되었고, 그 결과 3년만에 작가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초서 독서법이 이렇게 평범한 사람조차도 비범한 성과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눈으로만 책을 읽지 않고, 손을 사용하고, 생각하게 하는 독서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손을 사용하게 되면 전뇌가 잠에서 깨어나게 되고, 그 결과 눈으로만 독서를 할 때 보다 훨씬 더 좋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노트에 연필을 들고 쓰기 때문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 훨씬 더 강해진다. 집중을 하게 되면, 그냥 책을 읽을 때 열 시간이 걸릴 것도 한 시간이면 된다는 것을 필자는 잘 알고 있다.



독서는 누구나 하는 것이다. 양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단 한 가지의 차이인 양을 질로 바꾸는 요소는 얼마나 집중을 하고 책을 읽느냐 하는 것이다. 사람은 집중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모든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한 곳에 집결시킬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될 때 독서의 효과는 배가 되는 것이다.

집중을 잘 하는 사람들일수록 책을 읽을 때 눈으로만 읽지 않는다. 온 몸과 정신으로 그야말로 혼신을 다해 책을 읽는 것이다. 이렇게 집중해서 책을 읽는 사람은 그 순간이 매우 행복해진다. 그리고 생각이 명료해지고 사고력이 향상되고 통찰력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속도 위주로 빠르게 눈으로만 책을 읽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독서력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작 뉴튼이나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습득한 지식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남다른 사고력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남다른 사고력은 모두 그들의 남다른 노트 작성에 있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노트 작성의 본질은 양이다. 많은 양의 노트를 작성할수록 사고력이 향상된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 선생이 한 말인 '둔필승총은 매우 옳은 말일 것이다.

'둔한 기록이 총명한 머리보다 낫다' 라는 의미이다. 필자는 이 말은 약간 바꾸어 '둔한 기록이 결국 총명하게 만든다.' 라는 말로 바꾸고 싶다.

서툴지만 계속해서 노트를 하는 사람들은 결국 총명해지고, 천재로 도약하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 필자는 누구보다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바로 이런 경우이기 때문이다. 5년 전에 비해 지금은 정말 많이 총명해졌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실이 그렇다. 6개월 동안 엄청난 양의 책을 읽었지만, 그것은 모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독서였던 것이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후부터 점차 독서라는 것이 제대로 되기 시작했고, 점차 독서력의 엄청난 도약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6개월 전과 후의 차이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바탕이다. 그 당시의 6개월 전에는 그저 마음관리 없이 책을 읽었다. 그런데 6개월 이후부터 마음 관리를 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6개월 후 부터는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순수한 열정, 순전한 마음으로 모든 이들을 공경하고,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비우고 낮추는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물론 독서의 기술도 달라졌다. 하지만 독서의 기술, 독서의 방법이 달라진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독서를 하는 필자의 마음자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다산의 말처럼, 바탕을 세우자, 마음이 달라졌고, 마음이 달라지자, 독서의 방법과 기술도 달라졌다. 그러자 알게 모르게 다산 정약용의 독서법과 점차 닮아졌고, 학문하는 이유와 세상에 대한 세계관과 철학관이 다산을 닮아가게 되었다.

그러자 다산처럼 모든 것이 바뀌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다산 선생의 독서력이 필자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그의 다른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보통 그는 백 권의 책을 열흘 만에 독파하고, 정리하고,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필자는 보통 하루에 열 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읽는다기 보다는 독파하고, 정리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산처럼 읽고, 쓰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런데 평범했던 필자가 위대한 조선조 최고의 학자와 비슷하게 닮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고전독서의 위력이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이 고전독서의 힘인 것이다.

자기계발서만 읽었다면, 벤츠를 사고, 부자가 되고, 성공했을 것이다. 그래서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부산불이 아닐까?



정약용 선생은 독서를 해도, 반드시 정리하고 요약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하여야 자신의 것으로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바로 필자가 쓴 독서법 책인 초의식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초서 독서법과 의식 독서법을 합하여 초의식 독서법이라고 필자는 명명한 바 있다. 여기서 초서 독서법은 책을 눈으로만 보면 읽는 대로 곧 잃어버리게 되는 문제점을 개선한 독서법이다.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 새롭게 생긴 생각들과 주견들을 노트에 정리하면서 읽어야 한다.


인간에게는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애나 어른이나 식자나 무식한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은 타인에게 인정을 받을 때 큰 기쁨을 느낀다. 심지어 타인에게 인정을 받는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공자는 이러한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자주 말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남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성내지 않을 수 있는 것, 남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을 중요시 여겼다.

타인의 평가를 너무 중요하게 여기지 말고, 내면의 즐거움과 만족을 중요하게 여긴 인물이 바로 공자였다.

이런 사실은 그의 이 말에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즉, 한마디로 즐기는 것이 최고의 경지이며, 최고의 방법이며, 최고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즐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 좋아하는 것의 최고의 경지라면, 삶의 최고의 경지는 무엇일까?

공자가 말한 삶의 최고의 경지는 '곧음'이다.
"사람의 삶은 곧아야 한다. 곧지 않으면서 살아 있음은 요행으로써 죽음을 면한 것뿐이다."

공자는 또한 가장 훌륭한 정치는 덕치라고 말한다.
"덕(德)으로써 하는 정치는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고 많은 별들이 이를 향하는 것과 같다."

공자는 또한 [시경] 삼백 편을 읽은 후 한마디로 요약했다.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고 말이다. 우리가 공자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은 잘난 척하기 위한 지식습득 타입의 공부와 독서를 멀리하고, 스스로 마음을 수양하기 위한, 그리고 자신의 기쁨과 즐거움을 위한 공부와 독서를 하는 공부와 독서의 자세일 것이다.

공자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14년간의 고행은 그를 '집 잃은 개'가 되게 했지만, 그의 고결한 이상과 소명의식은 그의 명성을 널리 퍼져 나가게 했고, 그가 평생 붙잡고 놓지 않았던 공부와 교육은 그를 위대한 인물로 도약시켜 주었던 것이다.

동양의 큰 스승으로 그가 여겨지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사회를 개선시키기 위해 일평생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한 최고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동양 고전의 뿌리가 되고, 동양고전 중에 고전인 이유는 이책을 통해 우리는 수천 년을 뛰어넘어 위대한 스승을 직접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가 말한 군자는 또한 두루 넓으면서 편협하지 않는 사람이다. 반대로 소인은 편협하기만 하고 넓지 못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렇게 소인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배우기만 해서는 안 된다.

배운 만큼 생각을 하고, 사색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읽기만 하는 바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공자는 이런 사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책으로 배우기만 하고 골똘히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 골똘히 생각만 하고 책으로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공부를 한다면 반드시 사고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공부를 통해 얻은 지식은 구슬과 같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 지식과 정보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남다른 사고력을 통해 잘 엮고 통합할 수 있어야 창조적인 인재가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군자는 말하기를 조심하고, 행동은 빠르게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말은 빠르게 하고, 행동은 매우 굼뜨게 한다. 군자는 또한 일의 잘못을 자기 자신한테서 그 원인을 찾지만, 소인은 다른 사람한테서 찾는다.



노자의 사상을 관통하는 핵심이 바로 '억지로 행하지 않는 것이 지혜' 라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너무 억지로 행하려고 한다. 부자가 되고, 성공하고, 유명해지기 위해 억지로 자신을 부단히 계발시키고, 철저하게 시간을 관리하고, 자신을 관리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것들은 매우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너무 탐욕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른다. 물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타인과 세상과 민족을 위해 자신을 발전시키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여, 그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미친 듯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노자가 주장하는 바는 이렇게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되어지게 하는 것이다.

"내가 억지로 일을 꾸미지 않으니, 백성이 저절로 부유하게 되고, 내가 지나치게 욕심내지 않으니, 백성이 저절로 소박하게 되었다."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열정이 아니라 고요함이고, 드러냄이 아니라 낮춤이고, 과감하게 나서는 용기가 아니라 기꺼이 다른 사람의 아래나 뒤에 설 줄 아는 용기이다. 이것을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과감하게 하는 용기가 있으면 죽고, 과감하게 하지 않는 용기가 있으면 산다" 노자), 제73장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과 더불어 다투지 않아야 하고, 백성은 백성끼리 더불어 다투지 않아야 한다. 지나친 경쟁 사회에서 누군가와 다투지 않고 기꺼이 자신을 양보하고 다른 사람이 옳다고 인정해 주고, 타인의 아래나 뒤에 설 줄 아는 용기와 지혜를 이 책을 통해 배운다면 당신의 삶이 그렇게 빡빡하거나 무미건조하지는 않을 것이다.

위정자들이 전쟁을 과감하게 감행할 용기가 있으면 백성들이 죽는 법 이다.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자도 노자에게서 이러한 철학을 배웠던 것 이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매우 경계했다. 오히려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을 최고의 병법으로 여겼던 것이다.

현대인들이 만족함을 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여유를 누리고, 경쟁이 덜 심한 사회가 될 것이다.


창조성이란 결국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질적인 것들을 융합하고 엮고 조합하는 것에서 발휘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질적인 생각과 의식에 접해야 한다.


발전과 성장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수용과 모방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의 양의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질적 전환이 일어나 새로운 이론과 견해, 가설이 탄생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인류의 모든 학문과 사상은 발전을 해 왔던 것이다.


고전에 심취하면 할수록 당신의 인생은 거인을 닮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만큼 더 행복하게 되고, 즐겁게 되는 것이다.

인생은 주사위 게임이 절대 아니다. 스스로 하나씩 개척해 나가는 자유의지의 산물이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인생이다.'라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그 진지한 철학적 문제를 가장 잘 풀게 해 주는 것이 바로 고전이다. 고전은 수많은 인생들의 집결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많은 삶들과 연결될 때 당신의 삶은 즐거워지고 풍요로워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왜 하루하루가 즐겁지 않은 것인지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그 이유가 수만 가지 쯤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 수만 가지 이유 중에서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노예의 삶을 알게 모르게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아닐까?

"본성적으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속하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노예다.”

다시 말해, 이 말은 주체적인 생각, 주체적인 행동,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노예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고전에 심취한 사람은 삶이 즐거울 수 있다. 생각해 보라. 노예들의 삶은 즐거울 수 없다.

'조용한 절망의 삶'을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본성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른 무엇인가에 속하고 싶고, 기대고 싶어한다. 그래서 더욱더 힘이 들고 더욱 더 즐겁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고전에 심취할수록 놀라운 변화가 삶에 생기는 것을 필자는 느꼈다. 그 변화는 주체성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누군가가 정해 놓은 삶의 모습에 기대고 싶고, 속하고 싶었다. 그런데 고전을 읽으면 읽을수록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고,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 한마디로 삶이 즐거워지고, 의미가 생성되고, 가치 있는 삶이 되기 때문 이다.


부자가 되거나 성공을 해도 삶이 즐겁거나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열심히 일해서 자신의 손으로 부자가 되거나 성공을 한 사람도 그렇지만, 더 심한 경우는 로또에 당첨되어 쉽게 부자가 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몇 년 안에 파산하거나 이혼하거나 자살한다고 한다. 물론 100%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로또에 당첨되지 않았다면 파산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혼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자살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의 돈이 갑자기 자신의 수중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것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기가 힘이 들게 된다는 것이다.

돈이 갑자기 많아지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돈에 속하게 된다. 돈이 없었을 때는 생각도 하지 못한 생활과 생각에 종속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마치 초등학생에게 1,000만 원을 현금으로 주면서, '너 마음대로 하라' 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 인간은 감당해 낼 수 있는 만큼의 돈과 행운 안에서 행복할 수 있다.


사람은 즐거울 때 가장 창조적이 되고, 사고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즐거운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이 슬플 때, 분노에 차 있을 때, 상심에 잠겨 있을 때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가 높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고전과 친구가 되어야 할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고전과 친구가 되면, 고전 읽기가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 된다. 의무에서 특권으로 전환되는 순간 고전 읽기는 즐거움 그 자체가 된다. 즐거움이 될 때, 우리는 고전 읽기가 자발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자발적인 행위가 되면, 고전 읽기는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한 의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가장 이기적인 행위가 된다.


앞으로 시대가 변할수록 스스로 공부하고 배울 수 있는 독서 능력은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그것은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매일 어제 했던 것만 하면서 사는 삶은 죽은 삶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즐거운 고전 읽기의 주된 목표는 책만 읽어서 세상 물정 모르는 서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멘토들을 평생 자신의 곁에 두고 매일 가르침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고전을 위대한 멘토로 삼아, 평생 가르침을 받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도덕경]이란 책을 평생 자신의 책상 위에 두고, 매일 아침과 저녁, 읽고 묵상하고 그 책의 내용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 나간다면 그 사람은 노자라는 위대한 스승을 자신의 개인 멘토로 삼은 것과 다를 바 없다.

[논어]라는 책을 이렇게 한다면, 그 사람은 공자라는 위대한 스승을 자신의 개인 멘토로 삼은 것과 다름없다. [목민심서]를 비롯해서 다산 정약용의 많은 책들을 읽고 되새기고 실천한다면 그 사람은 조선조 최고의 학자인 다산 선생을 멘토로 둔 다산 정약용 선생의 멘티임이 분명하다.

자! 당신은 누구를 당신의 멘토로 삼았는가?

이 세상에서 정말 아름답고, 가치 있고, 탐나는 것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다. 고전이란 책은 돈을 주고 살 수 있지만, 고전이라는 책 속에 담긴 지혜와 높은 수준의 의식과 사고는 절대 돈을 주고 살 수 없다. 그것은 직접 책을 펼쳐 들고, 눈으로 읽고,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몸으로 실천해야만 자신의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한 번뿐인 인생, 제대로 살고 싶다면 고전에 미쳐야 한다.

타인을 위한 최고의 선물은 우리의 부를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풍요로움을 드러내 주는 것이듯, 우리 자신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세상의 부와 성공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있는 최고의 지혜와 의식과 생각을 발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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