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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무기력이다 - 박경숙

쭈니의아빠 2023. 3.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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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넘어져 울면 바로 엄마가 달려온다. 하지만 시설에서 자란 아이는 울고 있어도 불쾌감을 없애줄 대상이 없다. 울어도 자신을 달래주는사람이 없음을 안 아이들은 의욕을 상실하는 것이다.



방치나 소외로 촉발된 무기력이 아동기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거나 성인이 된 후 직장이나 소속 집단에서 받는 따돌림과 소외가 성인에게도 무기력을 불러올 수 있다. 물론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무관심과 방치, 나아가 정신적인 폭력도 유사한 결과를 초래한다.

혹시 당신이 의욕이 없는 것이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이 아닌지 한번 살펴보길 바란다. 그렇다면 당신이 주체적으로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보면어떨까?

얼마 전 장수하는 사람의 특징을 조사한 통계를 보았다. 일반적으로 담배나 술을 하는지 여부,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는지 여부, 직업에 따른 스트레스가 수명에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 통계는 의외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운동을 꾸준히 하여 스트레스가 적은 사람보다 친구가 많은 사람이 오래 산다는 것이다. 결국은 대인관계가 좋은 사람이 다른 부정적인 인자가 주는 영향을 극복하고 건강할 수 있다.

그러므로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 타인에게 다가가라. 당신을 위해 용서하고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타인을 사랑하라. 처음에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들과의 관계가 호전되면 그것은 작은 성공을 경험한 사례가 된다. 그것을 단초로 성취감과 유능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유능감이 마음을 관대하게 만들어 당신은 점차 좋은 동료,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다.

무기력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문제가 너무 커 그것을 해결하는데 에너지를 다 쏟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기력함없이 자기 일에 몰입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시각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당연히 사람들과의 관계도 개선될 수 있다. 아동기에는 받기만 할 수도 있었지만 성인이라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줄 수 없는 사람에겐 점차 줄 것조차 사라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를 무기력하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선불리 결론 내릴 수 없지만 복잡하고 부조리한 현대사회가 그를 무기력한 상태로 내몰지 않았을까. 사회가 무기력을 조장하고 개개인을 무기력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큰돈을 가진 사람이 노숙자가 되고, 탄탄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무기력에 빠진다.

마침내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제대로 성장해나간 아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성장 과정에서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 이상 있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베푼 무조건적인 사랑이 그 아이의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다. 이 결과는 앞서 셀리그만이 무기력에 빠지지 않은 개의 특성이 아마 그 개를 양육한 방식에 있는 듯하다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것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에미 워너 교수가 40여 년에 걸친 연구를 정리하면서 내린 탄력성의 핵심적인 요인은 '인간관계'다. 즉, 관계성이 높은 사람이 탄력성이 높고, 무기력에 빠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어른이 돌봐준 아이는 그 사람 덕분에 막강한 심리적 위로와 힘을 얻고, 자신의 삶을 지키며 긍정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 연유로 이들은 힘든 고비 때마다 다시 이겨낼 힘을 찾는 탄력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워너가 말한 관계성만이 탄력성을 높이는 요소는 아닐지 모른다. 지지해주는 어른이 없어도 강인하게 성장하는 아이가 있다.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나 아무리 원해도 그것을 얻을 수 없다는 절망,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와 미래의 희망이 사라질 때 우리는 무기력해진다.그런데 마음이란 가만히 내버려두면 게으름과 무기력, 나태와 절망 같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마음을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화로 속에서 뜨겁게 달구어진 부지깽이도 공기 속에 꺼내두면 식어버린다. 인간의 열정도 그냥 내버려두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상태인 게으름과 무기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산을 오르는 것만 배운 우리는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왜 예전처럼 다시 노력 하고자 마음먹는데도 자신이 변하지 않는지, 왜 변하려고 해도 안 되는지 혼란스럽다. 걷다 보면 정상에 가까워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던 산악인에게 사막은 절망의 장소다. 끝이 보이지 않고, 길도 찾을 수 없고, 방향을 잃기 쉬우며 신기루를 만나기도 한다.

무기력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아주 무능력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목표한 바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그래서 그동안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거창한 목표를 세운다. 물론 그는 무능력하지 않지만 목표가 너무 높다 보니 자연히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한다. 이런 일을 겪은 사람들에겐 그 반복된 실패가 치명적이다. 무기력에 한층 더 빠져드는 형국이 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무기력할 때는 목표 달성에 초점을 맞추어선 안 된다. 그 대신 '목적'을 가져야한다.

그 목적이란 '무기력 탈출'이다. 우선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원하는 일의 성취가 아니라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시급한 숙제다. 무기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어떤 일도 해낼 수 없고,무기력한 상황에서는 어떤 목표도 이룰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그곳은 산악 지대가 아니라 사막이므로 산을 오르는 방식은 버려야 한다. 사막을 건너듯 그곳에서 나와야 한다.

그리고 무기력한 사람은 “내가 이 일만 완성하면 무기력에서 해방된다"라고도 말할 수 없다. 오늘 성공해도 내일 다시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무기력의 주요 증상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데서 기인한다.

“하루를 잘 보내면 그 잠은 달다.
인생을 잘 보내면 그 죽음이 달다.”

역사 속 영웅들의 인생을 통찰한 월 듀런트w Duat는 저서 역사 속의 영웅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한 번쯤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내고 피곤한 가운테 단잡을 잔 경험이 있으리라. 하루하루를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다. 발달 심리학자들도 윌듀런트의 견헤에 동의한다. 그들은 '모든 발달 단계를 제대로 거친 사람은 노년기에 통합을 이루고 편안한 삶을 누린다'고 보고한다. 각 연령에서 해야 할 것,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행한 사람이 편안한 노년을 맞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나이와 위치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건강한 사람이다. 10대 학생이 할 일과 40대 가장이 할 일은 다르지만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그들의 인생이 열린다. 하지만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미래는 재앙이 된다. 그러므로 학생은 공부해야 하고, 세일즈맨은 매일 고객을 만나야 하며, 운동선수는 매일 몸을 단련하고 경기장에서 훈련을 해야 한다. 이렇게 건강한 사람만이 결과물을 내고 삶에 흔적을 남길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답은 하루를 승리로 이끄는 것이다. 자신의 뜻대로 이끌어가는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하루가 쌓여 일생이 되는 것을 고려할 때 의미 있는 인생을 살려면 하루하루를 승리로 장식해야 한다.

부를 걸어 내가 이긴 날이 많을 때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런데 하고자 하는 일에 몰입하지 못하고 오늘 하루를 허비한다면, 미래는 불투명해지고 절망이 스스로를 잠식한다. 그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사람의 마음은 하루 치만큼 병든다. 한 달을 하지 못하면 병은조금 더 깊어진다. 일 년을 허비한다면 그 병은 만성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10년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과연 그런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겉으로는 직장에 잘 다니고, 가게를 잘 꾸려가는 듯 보이지만 이들은 진짜 인생을 살지 못한다. 이들은 매일 불안함과 죄책감에 떨면서 불면의 밤을 보낸다. 어쩔 수 없이 내일을 기다리며 겨우 잠들지만 비슷한 상황이 또다시 반복된다.

경기에서 뛸 수만 있다면 순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인생에서 매번 1등만 할 수 있겠는가? 서른 번을 지다가도 서른한 번째부터는 연거푸 이길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설사 끝내 한 번도 1등을 하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뛰었다면 꼴찌를 하더라도 후회는 없다.

문제는 뛰지 못한다는 데 있다. 더욱이 뛰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도 전혀 뛸 수 없다면 반드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느리게 달려서가 아니라. 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기력에서 헤어 나오려면 자발성을 회복해야 한다. 사자처럼 자신이 주인이 되는 인생을 되찾고, 그런 삶을 계속 살아나가는 것을 꿈꿔야 한다.

당연히 우리는 낙타가 아니라 사자의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것은 쉽지 않다. 특히 무기력하게 낙타처럼 사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사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인간의 정신이란 노력 여하에 따라 진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절망의 연속일 만큼 혹독하다.

그러나 더러운 진흙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무기력의 절망은 '새로운 배움'을 남긴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무기력의 절망 속에서 깨닫게 되는 가치가 분명히 있다. 인생에서 보장된 것은 별로 없고 삶은 결코 만만치 않으며,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하지 못하는 일이 있음을 확실히 배우게 된다.

그런 깨달음을 얻으면 사막에서 낙타가 죽는 그 자리에서 사자가 태어나 포효할지 모른다. 사자가 지니고 있는 자발성을 회복하는 것이 첫 번째 정신진화의 목표이다.
낙타가 죽을 때 놀라운 변화가 시작된다. 자발성을 회복하려고 애쓰는순간, 자신처럼 살아내려고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는 이웃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는 절망 속에 허우적 댄 일이 있기 때문에 그 이웃과 함께 아파할 수 있다. 다른 이의 아픔에 공명할 수 있다면 남을 도우려는 마음을 품게 된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는 소설『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고자 애쓰는 것이다"라고 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남을 돌보다 보면 자신을 구할 길도 찾을 수 있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무기력은 방치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무기력한 사람들은 무기력을 이겨내고자 부지런히 운동을 하고 소일거리를 찾는다. 하지만 무기력은 무턱대고 바쁘게 살고 몸을 고단하게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정작 필요한 것은 정신을 단련하는 일이다. 정신 수준을 무기력보다 높은 단계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제 정신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노벨상 수상자의 정신과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정신이 같지 않으리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캠프파이어에서 한 걸음 떨어져라.
허상의 국경에서 멈추지 마라.

이것이 스티브 도나휴가 말한 여섯 가지 방법이다. 끊임없이 모양이 변하는 모래사막에서는 지도가 아니라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가야 하며 쉬어 가지 않으면 금세 지칠 수 있으니 오아시스를 발견하면 쉬어야 한다.더 많이 쉴수록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것은 무기력한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팁이다.

또 모래에 갇히는 정체 상태에 빠지면 자신만만한 자아에서 공기를 빼내어야 움직일 수 있다. 무기력한 사람은 대체적으로 자기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려고 한다. 이는 구덩이에 갇힌 자동차가 RPM을 높여 그곳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그 방법으로는 구덩이에서 나올 수 없고 오히려 바퀴가 더 깊이 빠질 확률이 높다. 이럴 때는 타이어에 바람을 빼고 서서히 나와야 한다. 자신이 알던 방식을 내려놓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야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리고 사막을 건널 때는 고독과 외로움을 가슴에 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피해서는 안 된다. 무기력한 사람도 대인 관계로 정서 장애를 치유할 수 있다. 또 무기력에서 비롯된 인지 장애를 극복할 수있는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기도 하다.사막에서처럼 혼자서, 외로움을 이기면서 또는 다른 사람과 함께 걸을 때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외로움과 친밀함 사이에서 춤을 추어야한다.


마지막으로 스티브 도나휴는 안전하고 따뜻한 캠프파이어에서 나와 깝감한 사막의 어둠 속으로 나아가되, 우리를 가로막는 존재하지 않는 국경선에서 멈추지 말라고 했다. 무기력에 빠졌을 때도 익숙한 것을 버리고 낯선 곳을 향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매 순간 우리는 안전지대를 벗어1나면서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고, 또 있지도 않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 용기가 우리를 무기력의 사막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우리가 서 있는 사막은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사막은 끊임없이 변한다. 오늘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도 바람 한번 불면 전혀 다른모습으로 변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막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을수 있다는 믿음 하나는 절대로 잃지 말길 바란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어딘가에 있을 사막의 끝을 향해 한 발 한 발 걸어나간다면 결과는 아무도예측할 수 없다. 그곳에서 우리는 번데기가 나비로 변하듯 전혀 다른사람이 될 것이다.

헤석하면'가지를 잡고 오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되 버랑에서잡은 가지마저 놓을 수 있는 사람이 가히 장부로다 라는 뜻이다. 버리는것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 명언이다.

버리는 것, 끝내는 것은 자기를 부정하고 단절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버리기를 두려워한다. 우리가 단숨에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체스터턴G. K. Chesterton은 '교육의 가장 중요한목적은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지식을 버리는 데 있다' 고 했다. 무기력한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이미 지나간 어제에 대해 '전면 부정'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무기력한 자신의 현재는 돌아보지 않고 거창한 포부만 다지며 일을 별이는 것이다.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작' 전에 반드시 '끝범'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새로운 시작'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계속 실패만 경험한다. 버림과 끝냄이 먼저다. 면저, 자신이 예전에 1등주자였다는 기억을 버려야 한다. 잘나가는 스타였다는 것도, 좋은 성적으로 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도 잊어야 한다. 과거를 모두 잊고 처음 달리는사람처럼 새로운 마음, 새로운 방식으로 훈련해 실력을 쌓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경기에 참가해봤자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랄 수 없다.“왜 안 되는 거지? 오늘은 될 줄 알았는데 오늘도 안 되는구나. 이유가뭐지?”
의지를 갖고 임했는데 아무리 시도해도 변하지 않는 자신을 보며, 우리는 왜 자신이 변하지 않을까 답답해한다. 이제는 '새로운 시작'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오래된 습관을 끝내는 단계를 밟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버리는 데는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용기 없는 자는 아무것도 버리지 못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그텔듯한 말로 남을 설특하고 여러 사람들 하고 인맥을 쌓는 일을 해본 적이 없어요 "
그는 사업을 하면서도 기업에 다닐 때 지닌 사고방식을 고수했다. 변화는 있지만 전환이 없었던 셈이다.
나는 이야기 속 남자와 비슷한 예를 많이 보았다. 남자는 과거의 방식이더 이상 통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인식했어야 한다. 아니, 현명한 사람이라면 퇴직하기 전부터 개인 사업자의 마음으로 전환한 뒤 퇴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바꾸지 않은 채 변해버린 생활을 유지하려고 했다.자신의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쯤, 이미너무 큰 손해를 봐서 더 이상 재기할 방안도 없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생각을 전환하지 못했을까? 이를 통해 변화가 어려운 이유를 생각해보자.


앞에서 말했다시피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과정도 끝냄·중립지대·새로운 시작, 이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 세 단계는 복합적으로 일이나기도 하고 단계별로 분리되어 발생하기도 한다. 여기서 쉽게 범하게되는 오류가 있다. '새로운 시작'만 하면 변화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기쉽다는 겸이다. 그런 생각 때문에 변화하고자 하는 계획이 매번 실패한다.


그러나 전환'은 그 물리적 변화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심리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전환은 물리적인 '변화'를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이기 위해겪어야 하는 마음 내부의 수용 과정, 화학적 변화를 거친 후의 모습과 같다.따라서 단순한 변화로는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화학적 변화를 거치는 '심리적 전환'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서 전환은 일종의진화다. 어제 달리지 못한 육상 선수는 오늘 다른 경기장에서도 뛰지 못한다. 그가 경기장을 옮긴 것은 물리적 변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화학적변화나 심리적 전환이 없기 때문에 다시 뛰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의 전환없이는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변화가 어렵고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것도 어렵다.

대기업 중역으로 20년 정도 직장에 다니다 퇴직하고 개인 사업을 시작한 중년 남자가 있다. 그는 야심차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창업할 때마다 실패했다. 결국 그는 마지막 희망이던 가게마저 처분하고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변두리의 작은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다. 누구보다성실하고 똑똑하던 그가 사업에 실패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가장 큰 문제는 그가 영업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업의 성패는 영업능력에 달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구멍가게든 세계적인 기업이든 영업을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영업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우리는 오는손님만 받고 손님이 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회계사 출신으로 기업의 회계 담당 부서에 몸담았던 그는 조용한 곳에서 수를 계산하는 데는 능력을 발휘했지만 영업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무기력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이런 미궁과 유사하다. 걷기만 한다면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우리의 본성을 회복하기만 하면 되므로 애써 없는것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미궁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중심을 향해 걸어간 후, 중심에 도착하면갔던 길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 나오면 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잠재력을믿고 스스로의 힘으로 주어진 길을 걷듯 무기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느 병원 광장에 그려진 미궁을 따라 노인들이 보행 보조 장비에 의지해 걷고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 노인들은 같은 입구를 통해 미궁 속으로 들어갔지만 자신의 보행 속도에 따라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기력의 사막에서 걸어 나오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우리가 무기력의길에서 빠져나올 때도 우리의 페이스에 의지해야 한다. 남의 보폭이 아닌자신의 보폭으로 걸어야 한다. 친구나 스승이 일시적인 도움을 줄 순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혼자의 힘으로 그곳을 나와야 한다.

성경 속 예수는 걷지 못하는 열두 살짜리 소녀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한다.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하지만 그녀를 일으켜주지는 않는다. 예수의 말을 듣고 일어나 걸은 것은 소녀 자신이다. 혼자 힘으로 일어나고 걸어야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있다.
미궁에서는 급히 나오려고 서두를 필요도 없다. 서두르면 오히려 길이 아닌 곳으로 잘못 들어갈 위험이 있다.


"투우의 소들은 나름의 '카렌시아'를 갖고 있다. '카랜시아'란 소가 위협받을 때 돌아가는 특정한 자리를 뜻한다. 투우가 계속되고 더 자주위협을 받으면, 소는 몇 번이고 '카렌시아'로 돌아간다. 소는 안전한 곳으로 물러난다고 믿지만, 사실은 자신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리는 셈이다. 소는 점점 더 쉬운 공격 상대가 된다."

중립지대의 혼란을 피하고자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모습은 '카렌시아'로 돌아가는 소의 모습과 같다. 익숙한 곳은 우리의 함정이다. 우리가빠진 구덩이에 다시 빠지는 것은 익숙한 것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중립지대에 들어섰다면 절대 과거로 되돌아가지는 마라.

변화와 전환을 위해서는 중립지대의 혼란을 겪어도 절대로 이전 상태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곳이 바로 죽음의 함정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대신 새 땅을 확보해야 한다. 얼핏 안전해 보이지는 않아도, 새로운 곳에자신의 몸을 의탁할 땅을 확보해야 적에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카렌시아가 아닌 새 땅에서 새로운 전략을 짤 수 있을 때 비로소 전환이 시작될 것이다.

익숙한 카렌시아로 후퇴하는 것은 오래된 습관의 반복이다. 과거의 습관은 아무리 행해봐야 공희전만 일으킬 뿐, 전환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렇지만 자꾸 카렌시아가 눈에 들어와 그곳으로 복귀하고 싶어진다. 엔트로피의 법칙이 작동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엔트로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 문제와관련해 칼리 피오리나의 말에서 한 가지 배울 수 있다.



“점진적인 변화가 안전해 보이지만, 집진주의로는 관성과 저항을 이기는 데 필요한 힘이 부족하다. 멈칫거리면 실패하고 만다. 일단 변화가시작되면 후퇴는 치명적이다. 배수진을 처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자동차로 오르막을 오를 때 엑셀러레이터를 적당히 밟으면 소리만 요란하게 날뿐, 언덕을 치고 오르지 못한다.

액셀러레이터를 강하게 밟아 RPM이 임계치를 넘어야만 비로소 그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영항을 받지 않고 언덕을 치고 오르는 힘은, 순간 발휘하는 추진력과멈칫거리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는 용기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결국 변화를원한다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현 상태에서 할 수있는 최대한 힘을 모아 그곳에서 탈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진정으로 전환하기를 원한다면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한 번에발휘에 그곳에서 빠져나와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 무기력의 사막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는 타이어에 바람을 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전략이다. 언제 타이어에 바람을 뺄지, 언제 RPM을 올릴지를 판단하는 것은 또 다른숙제다. RPM을 올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것을 경영학에서는 '고슴도치 전략'이라고 한다. 여우는 많은 전략을가지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자신의 몸을 웅크리는 한 가지 전략밖에 모른다. 그러나 여우와 고슴도치의 싸움에서 여우는 절대 고슴도치를 이길 수없다. 고슴도치가 몸을 웅크리는 단 한 가지 기술로 자신의 생명을 지키듯무기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


단 한 가지라도 전문가가 되는 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한 분야에서숙달되어 유능감이 생기면 비로소 언덕을 치고 오르는 자동차가 될 수 있다. 이때는 인내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과감히 시도해야 한다. 행동이 필요하다면 즉각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선택이 무기력의 사막에서 탈출할 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내가 무기력에서 빠져나오는 데 도움이 된 유일한 고슴도치 전략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다. 내가 이것저것 시작했다면 결실을 얻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인 읽고 쓰는 일을 통해 나를 찾기 시작했고 어느 날 문득 내가 더 이상 낙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한 스물여덟 살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두렵고 떨린다.
그러나 그때 그 결정이 그랬듯 이 결정도 시간이 지나떤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고 있다. 내 속에 잠재된 생명력이 나를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생을 선택한 독수리의 자발적인 무기력이 그의 남은 생에 자유를주었듯이 나의 지금의 결정이 내 남은 생에 자유와 의미를 남기리라는 것을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다.

경민아, 삶에서 변하지 않고 확고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기를바란다. 지금 네가 앓고 있는 그 아픔이 너를 분명 키워줄 것이다. 지나가는길목마다 네게 가르침이 될 문구들이 운명처럼 네 앞에 나타날 거야. 그러니 불안하더라도 지금 하는 그 일을 포기하지 마라. 힘들지만 대학원을 끝까지 마치길 바란다. 지금의 인내가 너를 기쁘게 할 날이 반드시 올 거야.

그러니 너의 길을 계속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비록 실수와 실패가있을지라도 정신을 잘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면 네가 서 있는 곳에서 길을찾을 수 있다.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가고 싶은 곳 다 가보면서 살되, 너의영혼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라. 네 영혼의 떨림이 너의 의식을 공명할때 너는 자유롭게 숨 쉴 수 있고 자연히 네게 성공이 찾아을 것이다.

남들이 말하는, 사회가 강요하는 성공을 좋지 말고 너의 길을 가라. 어떤길을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힘이 없다고 무기력하다고 하는 너의 외침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 아우성의 크기만큼 네 부활의 날도 가까웠음을 나는 믿고 있다. 생명의 힘이 네 속에 있기 때문이다.


여렇게 어러한 쉽어 가능한 것일매? 이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를 알이내기 취테 MIT의 경영학 교수 카린 라카니m uann와 보스턴 컨설팀그룹의 전설된트 함 훌브는 가 나었다. 그등은 북미 대특과 유립에서활동 중인 공게 소즈 개별자 684명을 대상으로 공게 소스 프로책트에 장혁하게 된 이유를 조사했다.

라카니와 올프는 이들이 소스를 개발해 공개하는 이유에 대해 "즐거음에 기초하는 내재 동기. 즉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얼마나 스스로의 창의력을 느낄 수 있는지가 가장 폭넓고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라고 보고했다.기쁨이 그들을 이끄는 것이다. 돈을 받지 않고 할 때는 의무감이나 책임감보다는 재미나 기여를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예가 많다. 따라서 이들은 그일에서 즐거음을 찾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이들은 소프트웨어 개발중 미국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몰입now'이라 부른 '최적의상태'에 자주 도달했다고 한다.

즉, 공개 소스 프로젝트 참여자는 주어진 소프트웨어의 문제점을 정복하는 '재미'와 프로그래머 사회에 선물을 주고 싶다는 '기여'의 욕구가 동기가 되었고, 그 일을 하는 동안 몰입을 경험하며 점점 그 일에 더 깊이 몰두하는 내재 동기의 선순환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조류를 예상이나 한 듯 큰 획을 그은 사건이 이미 10년 전에 일어났다. 2002년 노벨재단은 경제학자가 아닌 미국의 한 심리학자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수여했다. 매우 이례적인 그 행운의 주인공은 대니얼캐니먼Daniel Kahneman이다.


외적 평가에 지배받는다면 즐거울 수가 없다.
인간에게는 자기가 자기 행동의 원천이고 자기 행동의 주인공이고 싶어하는 기본 욕구가 있다고 한 사회 심리학자 드샴L. de Charms의 말에서 우리는 활동이 싫어진 것이 자율성, 자발성의 부재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남이시키고 평가하는 일은 하기 싫은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면 스스로가 동기를 끌고 갈 방법을 알 수 있다. 즉,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무기력을 일으키는 동기 장애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무기력을 물리칠 수 있는 길이 자발성을 회복하는것임을 이해한다면, 내재 동기와 자신의 재미, 기여 여부에 따라 움직이는것이야말로 무기력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의미를 찾으면 하고 싶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재미와 기여를 찾아낼 수 있을까?
앞에서 보았듯 우리의 의도와 별개로 동기를 약화시키는 사건이나 어쩔수 없는 외부의 상황으로 동기가 약화되는 예도 있다.


따라서 하위 레벨인 환경·행동·능력 레벨에서 생긴 문제는 상위에 있는 신념/가치관, 자아상, 영혼의 레벨에서 해결할 수 있다. 신념과 가치관,자아상을 이루는 것은 단순한 욕구 그 이상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의태도'나 '생의 의미'와 연관이 있다. 의미를 찾은 인간은 욕구에 따라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가 찾은 의미가 삶을 이끌어간다. 의미가 내재 동기를 강화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기력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환경에서 비롯된 특정 사건이다. 인간의 능력과 행동은 무기력을 야기하는 직접, 혹은 간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환경에 영향을 받아 행동하지 않게 되었거나 능력이 부족해 무기력해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발생한 무기력의 문제도, 무기력이 발생한 레벨이 아니라상위 레벨에서 해결해야 한다. 상위 레벨인 신념과 가치관의 레벨에서 치유해야 진정한 치유가 가능하다.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 욕구 이론에서 자아실현의 욕구가 자기 존중의 욕구보다 위에 있다고 밝혔다. 인간은 자아실현이라는 목적을 위헤서라면 자기 존중이 침해되는 치욕도 견뎌낼 수 있다. 이것이 의미를 지닌인생의 모습이다. 의미가 없는 인생은 저급한 욕구와 환경에 따라 흔들리지만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은 하위 욕구를 뛰어넘어 자신을 완성할 수있다.

인간이 유능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으로 나쁜 사태가 개선될수 있다는 예상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신의 가르침을 받은 동료가 변화하는 체협을 하면 가르친 사람이나 가르침을 받은 사람 모두에게 유능같을주는 경험이 될 수 있다. 리핏은 “나에게 영향력이 있고 상대가 나를 존경하고 필요로 한다고 느끼는 것이 서로 가르치기가 주는 이점"이라고 했다.이렇듯 유능감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 타인을 도와주면 자신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자각하게 마련이다. 알코올의존증을 겪었던 사람이다른 중독자를 돕고, 우울증에 빠졌던 사람이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자원봉사를 통해 자신의 상처까지 함께 치유하는 예를 우리는흔히 볼 수 있다.

반대로 인간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무력감을 느낀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므로 경쟁에서 이기려는 생각을 버리고 타인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출발해야 한다. 비록 작은 일일지라도 타인을 돕는 일을 시작해보자.공헌을 하면 확고한 존재감을 느끼게 되어 자신이 남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이와 더불어 자연히 유능감도 생기고 비로소정서도 편안해진다.

앞에서 저하된 동기를 강화할 때는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삶의 의미가 '기쁨'과 '기여도'를 높여주어 내재 동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내재 동기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기쁨'이라는 긍정적 정서를 갖게 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때의 기여도는 타인에게 하는 공헌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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